그래도 걸어야 한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3개월에 한번은 프랑스 영화를 본다. 서른살이 넘으면서 나에게 했던 작은 다짐이다. 잘 한 것 같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L'Avenir)을 최근들어 다시 봤다. 이 영화는 반드시 글로 나름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를 어느정도는 이야기해야겠지. 철학 교수인 나탈리는 한꺼번에 말도 안되는 일을 경험한다. 남편은 바람이 나서 따로 살겠다고 선언을 하고, 어머니는 거식증에 걸려 왕년의 모델 시절만 그리워하며 요양원에서 죽을거라고 새벽에 전화를 한다. 아끼던 철학과 제자는 유나바머(미국 유명 테러리스트)의 철학을 따르면서 나탈리를 무시한다. 학생들은 시위하며 수업을 안 듣는게 일상이고,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신다.

영화 안에서 나오는 장면은 어찌보면 진부하다. 나탈리의 멍한 표정만 가득하다. 갯벌에서 어머니와 전화가 안되 하염없이 질퍽한 땅을 걷는 장면. 남편이 바람이 나고 버스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야외수업 중 종이들이 날아가서 나탈리가 줍는 장면.
한편으론 책 읽고 책을 소개하는 장면이 가득하다. 조금은 무거워 철학책 몇권들이 등장하는데 포스트잇은 군데 군데 붙어있고 나탈리는 그 책을 이동 중에 읽는다. 영화 중간중간, 철학 이야기가 작게 소개된다. 한 장면, 나탈리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다.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쯤, 장례식장의 나탈리에서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우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나는 개탄할 상황에 있다. 만약 신이 있어 자연을 뒷받침하고 있다면 자연이 신을 명확히 드러내 주거나 자연이 보여주는 표적이 거짓이라면 그것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기를. 어느 편을 택할 지 알 수 있도록 자연이 모든 걸 말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내가 놓여잇는 상태에서 내가 뭔지,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나는 나의 신분도 의무도 모른다. 내 마음이 진정한 선을, 그것을 따르기를 온전히 바란다. 영원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비싸지 않다. - 팡세
대학시절, 가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닳아서 창 밖을 바라보며 광역 버스 타던 시기가 많았다. (아이폰 4는 배터리가 정말 빨리 닳았다.) 그럴 때면, 고요하고 조용한 버스 안에서 밋밋한 기분으로 꽤나 오랜 시간을 지나간다. 이러한 시간들 속에서 내 안의 수많은 진리들(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게 남아있는 앞선 인생을 사신 분들의 좋은 말들) 이 때때로 깊이 양생이 되는 시간들이 그 때였을 것이다.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온다. 또한, 느닷없이 찾아오고 때로는 중첩되서 찾아온다.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그것들을 내 마음으로 통과시킬 수 있을까.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진리가 내 안에 살아서 이길 힘을 줄 수 있을까. 삶은 어쩌면, 화살이 마음이란 과녁에 계속 꽂히는 시간의 반복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기쁘게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어도 며칠 뒤에 가까운 누군가는 죽고.
내 안에 양생되는 많은 중요한 것들이 깊이 양생되어 조금은 단단해진 건물같았으면.단단해진 건물을 품고 차분하게 인생을 걸었으면.